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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은 우리민족이 오랜 역사를 통하여 정신적으로 의지해온 토속신앙이다. 사전적 의미는 원시종교의 한 형태로서 우리나라 전통 사회의 무속에서 무당이 초자연적 존재와의 교류를 통해 질병의 치료뿐만 아니라 미래의 길흉화복을 예언하는 등의 종교적 역할을 행하는 것이다. 좁은 의미에서의 무속은 무당과 관계된 종교 현상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은 사회적으로는 유교도이고, 철학적으로는 불교도이며, 고난을 당할 때에는 영혼숭배자이다." 이 말을 남긴 사람은 한(韓) 말에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왔던 헐버트 다. 한국인들이 불교적으로 생각한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그의 관찰은 한국인들의 종교적 성향을 제대로 읽은 것이다. 마지막에 한국인들이 영혼숭배자라고 한 것은 우리가 무속을 섬기는 모습을 말한 것이다. 무속은 엄연한 하나의 종교이므로, 종교학에서는 무속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무속의 '속'은 저속하다는 의미로 조선조 때 유교 선비들이 무속을 비하하며 낮추기 위해 썼던 단어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무속보다는 온전한 종교라는 의미에서 무교(巫敎)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여러분은 무교가 엄연한 종교라고 하니 놀라셨죠? 잡신이나 섬기고 미신에 불과해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저급 신앙이라고 생각하던 무교가 종교라 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종교학에서는 결코 미신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하나의 신앙 체계를 한낱 미신이라고 낙인찍는 것은 자기 종교의 시각으로만 보는 제국주의적인 발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동양화를 봐도 굿판을 묘사한 혜원 신윤복의 무녀신무<혜원풍속도첩>를 보면 우리 생활 속 깊숙이 자라 잡았음을 알 수 있다. 무교에도 여타 유신론 신앙처럼 모시는 신이 있고 사제(무당)가 있으며 이들을 따르는 신도들이 있다. 그리고 이 세 요소는 모두 '굿'이라는 의례에서 만난다. 물론 무교가 불교나 기독교처럼 극도로 발전한 세계 종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구조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민속 문화의 뿌리를 캐다 보면, 무교로 연결되는 것이 적지 않다. 무교는 한국인의 영원한 종교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러한 주장에는 나름대로 명확한 증거가 있다. 우리나라의 민속 문화는 그 뿌리를 캐다 보면 마지막에는 무교로 귀결되는 게 적지 않다. 그 예로 민속 예술 가운데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악은 판소리다. 반면 대표적인 독주곡은 산조이고 가장 출중한 춤은 살풀이춤이다. 이 세 장르의 예술은 가히 세계적이라 어디다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들이 어디서 나온 건지 아십니까? 남도의 시나위 굿판에서 나온 것입니다.

시나위라고 하면 젊은 분들은 신대철 씨가 하는 락(rock)밴드 이름으로만 알지 굿판을 지칭한다는 사실은 모를 겁니다. 이 굿판에서 시나위 음악에 맞추어 추는 춤이 살풀이였고 합주하던 음악을 독주로 하면 산조가 된답니다. 그리고 여기서 노래로 불리던 것이 나중에 판소리로 발전하였습니다. 이처럼 굿은 우리 민속 문화의 저장고와 같았습니다.

현대 사회에도 무교에 대한 수요는 계속되고 있으며, 무교는 그 역사가 매우 길다. 단군도 무당이었다고 하는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내려오는 동안 우리나라에는 무교가 절멸된 적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민중적인 차원에서, 특히 여성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국인들은 지금도 잘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으면 무당이나 그와 비슷한 유의 점술가를 찾아간다. 이런 모습은 한국인들이 아직도 점보기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당은 대체로 신을 모시는 강신무와 그렇지 않은 세습무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강신무를 중심으로 말하면. 원래는 한강을 기점으로 하여 그 북쪽에는 강신무가 많았고, 남쪽에는 세습무가 많았다고 하는데 이제는 두루 섞여서 그렇지 않다고 한다.

옛날에 한 집에서 굿이 벌어지면 마을 전체가 축제 분위기에 마을 잔치였다고 한다. 굿판에서는 누구나 춤출 수 있고 음식이나 술을 공짜로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온갖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일종의 해방 공간이 되는 셈이다. 오죽하면 '춤추는 며느리 보기 싫어 굿 안 한다.'라는 시어머니의 푸념이 전해지겠습니까? 하지만 굿판에서는 그 무서운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됐던 겁니다.

이렇듯 우리의 생활 속에는 굿판의 정서가 녹아 있다. 아마 음주 가무를 우리나라 사람처럼 좋아하는 민족은 없을 겁니다. 1인당 알코올 소비율 세계 2위에다 전국을 뒤덮은 노래방의 모습이 이런 사실을 가늠케 한다. 이렇게 신(명)이 많은 것은 모두 무교와 깊은 관계가 있을 듯하다. 무교는 한국인의 가장 고유한 종교라 한국인들의 성정에 그 특성이 반영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다양한 민속 문화가 담겨있는 굿은 문화의 보고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무교에는 한국의 다양한 민속 문화가 담겨 있다. 예를 들어 국문학자들에 따르면 굿은 우리 민족 문화의 보고이며. 많은 서사(narrative) 무가가 있기 때문이다. 음악과 춤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외에 복식?음식?종교?연극 등의 측면에서도 굿은 진실로 연구할 거리가 많다. 그래서 굿을 보지 않았으면 한국 문화를 논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무교를 미신으로만 몰고 있어 안타깝게 생각한다.

외래의 문화가 들어오기 훨씬 이전의 고대 사회에서 형성된 무속은 우리 민족의 고유사상을 대표하는 민속신앙으로서 사회의 모든 생활을 크게 지배해왔으며, 국가적으로 공인된 민간신앙 이었다.

중세의 무속은 도성 안에 국무당(國巫堂)을 두고, 별예기사도감(別例祈思都監)을 설치하여 국가적인 기도의 행사를 하였다. 그러나 근세에 이르러 유학자들이 무속을 불교와 습합된 허무맹랑한 사도(邪道)와 음사(?邪)로 규정하고 여러 가지 율령을 정하여 무속을 금기시 하면서 무속은 거의 그 전승력(傳承力)을 상실 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외적인 제약에도 불구하고 무속인 들은 민중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사제(司祭), 치병(治病), 예언(豫言)등으로 명맥을 이어 가고 있으나 근세 후기에 이를수록 실학사상의 팽배로 인해 무속인 들의 생계에 위협에 봉착해 존폐의 위기까지 오게 되었다.

무속인의 기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과 인간 사이에 매신저 역할로서 신의 뜻을 예지하고, 이를 인간에게 계시(啓示)하는 한편, 인간의 소원을 신에게 고(告)하여 재액을 물리치고 복(福)을 내리는 것에 대한 소임을 다 하는 것이 중요한 사명이었으며, 이러한 일을 주술(呪術)에 의하여 시행하는 주술자(呪術者)로서 생활 속 일부분을 담당하게 되었다.

무속인의 예언적 기능은 개인의 운명이나 길흉화복을 예지하고, 인간의 미래와 더 나아가 국가의 미래를 미리 알아내는 일이 중요한 일이었다.

신라에서는 천문박사(天文博士)를 두어 무속인들 에게 미래에 대한 예지를 전담하게 하였으며, 여기서 천문박사는 곧 무속인 이었다. 고려에서는 태복감(太卜監), 이조에서는 서운관(書雲觀)에서 전담하였다.

이처럼 왕 자신이나 관료, 궁중인 들을 비롯하여 유학인과 일반 서민에 이르기 까지 무속에 의지하고자 함으로써, 이조사회 전반에 무풍(巫風)이 성행할 수 있었으며, 무속인의 예언적 기능이 그들의 시회로부터 지지와 공명(共鳴)을 얻게 됨으로서 생활이 안정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잡귀나 악령의 침범이 각종 질병과 우환을 불러오게 되는데, 이것을 막기 위해서 무속인의 치병기능이 활용되고 인정됨으로서 고대 이래로 위로는 군왕으로부터 아래로는 서민에 이르기까지 무속인의 도움을 받곤 했다. 때로는 유학자들과의 충돌사태까지 발생되기도 하였으나 그러면서도 무속인의 치병의식은 당연한 기능으로 인정되었다.

세종대왕 같은 현군도 열병이 유행하자 무속인 들을 동원시켜 구병(救病)하게 하였고 이조시대 전반을 통해볼 때 왕조에 따라서는 무속인 을, 도성 내 병자 구호기관이었던 동서활인원(東西活人院)에 소속케 하고, 직접 관청에서 무속인 을 지휘 통솔하기도 하였다.

무속의 세계에서는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재물을 차리고 굿이나 치성을 드릴 때, 보이지 않는 신을 부르며 여러 가지 의식을 행한다. 이때 일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신 앞에서 벌어지는 무속인의 행위에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무속인 들은 신의 명호를 부르며 그 신과 대화하고 신의 공수를 내린다. 신의 원력은 예측할 수 없는 현실과 동떨어진 방법들로 악귀를 달래거나 쫒으며 모든 액운액살을 걷어내고, 복록을 얻을 수 있게 도움을 준다.

하지만 역사는 무속이 사회에 끼친 공(功)보다는 과오(過誤), 무속의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음은 역사를 주도하는 지배계층의 식자(識者)들 이었고, 무속을 전승시킨 사람들은 피지배계층의 학문적으로 무식(無識)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인지도 모른다.

위의 역사적 사실에서 무속인은 사회에 역량을 발휘한 공이 있었음이 분명한데, 예부터 무속인은 사회로부터 천대와 멸시 속에 밑바닥 인생을 살아오며, 입에서 입으로 오늘날에도 구전으로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다 보니, 체계적이고 문서화 되지 못해 사라진 것들이 무수히 많다. 이러한 내용들을 경문집에 수록된 책들을 접하면 일정부분은 알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무속의 일련과정들이 구전으로 전해 내려 오다보니 왜곡되기도 하고 누락되기도 하며 때로는 과장되기도 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어찌 무속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이 귀신을 쫒는 경을 만들 수 있으며, 또한 그러한 경문을 읽어 귀신과 대적할 수가 있는 일인가 ??

선하고 올바르게 신을 모시는 무속인 분들이 더 많은 건 사실이지만 허무맹랑한 논리와 주장들이 무속세계를 혼탁함으로 어지럽히고 있으며 몇몇 소수 무속인 들이 쉽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허구와 왜곡, 과장, 겁박 등으로 일반인을 현혹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늘에 제를 올리고, 신을 모시고 있는 직분의 제사장이 라면 그 신께 누를 끼쳐도 아니 되고, 자신의 양심을 속여도 안 될 것이다.

[참고문헌]

(주)북이십일아울북. 개념사전. 2010.8.5
한국문화의보고. 무속신앙. 최준식(이화여대 국제대학원교수)
해동무속총서4. 신의 비방술. 송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