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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의 하나로 대설과 소한 사이에 동지가 있다.
동지는 24절기의 하나로서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24절기는 태양력에 의해 자연의 변화를 24등분하여 표현한 것이며, 태양의 환경이 270도에 달하는 때를 '동지'라 고 한다.

동지가 음력 동짓달 초순에 들면 애동지라 하고, 중순에 들면 중동지(中冬至), 그믐 무렵에 들면 노동지(老冬至)라 한다. 동지는 일년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어 음(陰)이 극에 이르지만, 이 날을 계기로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여 양(陽)의 기운이 싹트는 사실상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이다.
그러다보니 동지를 흔히 아세(亞歲) 또는 작은설이라 한다.
이는 옛 역법상 동지를 설로 지냈던 풍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념은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라는 말의 어원이기도 하다.
또 동지는 날씨가 춥고 밤이 길어 호랑이가 교미한다고 하여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고도 부른다.

중국 주나라에서는 이날을 생명력과 광명이 부활한다고 생각하여 동지를 설로 삼았다.
당나라 역법서(曆法書)인 선명력(宣明曆)에도 동지를 역(曆)의 시작으로 보았다.
역경(易經)에도 복괘(復卦)에 해당하는 11월을 자월(子月)이라 해서 동짓달을 한해의 시작으로 삼았다. 동지와 부활이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신라에 이어 고려시대에도 당(唐)의 선명력을 그대로 썼으며, 충선왕 원년(1309)에 와서 원(元)의 수시력(授時曆)으로 바뀔 때까지 선명력을 사용하였다. 이로 보아 충선왕 이전까지는 동지를 설로 지낸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편 구미(歐美) 각국의 성탄절(크리스마스)도 초기 기독교가 페르시아의 미트라교(Mithraism)의 동지 축제일이나 태양 숭배의 풍속을 이용해서 예수 탄생을 기념하게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약성서에도 예수의 탄생 날짜 기록은 없다. 농경민족인 로마인의 농업신인 새턴(Saturn)의 새턴네리아 축제가 12월 21일부터 31일까지 성행했고, 그 중 25일이 특히 동지 뒤 태양 부활일로 기념된 날이었다.

양력과 달리 음력은 달의 운동에 근거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에 달의 변화는 잘 나타내 주지만 태양의 움직임은 잘 나타내 주지 않는다. 계절의 변화는 태양의 운동에 의하여 결정되므로 음력 날짜와 계절의 변화는 잘 일치하지 않는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음력에서는 계절의 변화, 즉 태양의 운동을 표시하여 주는 24절기를 도입하여 같이 사용한다. 따라서 음력은 태양의 움직임을 24절기로 표시하여 주기 때문에 태음태양력(우리가 흔히 음력이라 말하는 것은 원래 '태음태양력 太陰太陽曆'의 준말이다. 여기서 '陰'은 '달'을 뜻하고 '陽'은 태양을 뜻한다)이라고 한다. 즉 달(태음)과 태양의 운동을 모두 고려하여 주는 역법이란 뜻이다.

이들 24절기가 계절의 특성을 말해주지만 우리나라의 기후가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24절기의 이름은 중국 주(周)나라 때 화북 지방의 기상상태에 맞춰 붙였기 때문이다.

절기는 이처럼 음력을 쓰는 농경사회에서 필요에 따라 양력과 관계없이 만들었지만, 태양의 운동을 바탕으로 한 탓에 결과적으로 양력의 날짜와 일치하게 된다. 실제로 달력을 놓고 보면 24절기는 양력으로 매월 4∼8일 사이 그리고 19∼23일 사이에 온다. 절기와 절기 사이는 대부분 15일이며, 경우에 따라 14일이나 16일이 되기도 한다. 이는 지구의 공전 궤도가 타원형이어서 태양을 15도 도는데 걸리는 시간이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경(易經)에는 태양의 시작을 동지로 보고 복괘(復卦)로 11월에 배치하였다. 따라서 중국의 주(周)나라에서는 11월을 정월로 삼고 동지를 설로 삼았다. 이러한 중국의 책력과 풍속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보인 옛 사람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경사스럽게 여겨 속절로 삼았다.

이것은 동지를 신년으로 생각하는 고대의 유풍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전통사회에서는 흔히 동지를 '작은 설'이라 하여 설 다음 가는 경사스러운 날로 생각하였다.

동지팥죽은 중국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의 재주 없는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疫疾)귀신이 되었는데, 그 아들이 생전에 팥을 두려워하여 팥죽을 쑤어 물리친 것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 동지팥죽은 절식이면서 동시에 벽사축귀 (邪逐鬼)의 기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다분히 후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야기로 팥죽의 축귀(逐鬼) 기능에 대한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팥은 붉은 색깔을 띠고 있어서 축사(逐邪)의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 역귀(疫鬼) 뿐만 아니라 집안의 모든 잡귀를 물리치는 데 이용되어 왔다.

'동지팥죽' 또는 '동지두죽(冬至豆粥)' 이라 하여 팥죽을 쑤어 먹는 오랜 풍속이 있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동짓날을 아세(亞歲)라 하여 팥죽을 쑤어 먹는데, 팥죽을 쓸 때 찹쌀로 새알모양으로 빚은 속에 꿀을 타서 시절 음식으로 먹는다. 또한 팥죽은 제사상에도 오르며, 팥죽을 문짝에 뿌려 액운을 제거하기도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점은 음양사상(陰陽思想)의 영향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즉 팥은 붉은 색으로 '양(陽)'을 상징함으로서 '음(陰)'의 속성을 가지는 역귀나 잡귀를 물리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팥죽을 다 만들면 먼저 사당에 올려 동지고사(冬至告祀)를 지내고, 각 방과 장독, 헛간 같은 집안의 여러 곳에 놓아두었다가 식은 다음에 식구들이 모여서 먹는다. 사당에 놓는 것은 천신의 뜻이고 집안 곳곳에 놓는 것은 축귀의 뜻이어서 이로써 집안에 있는 악귀를 모조리 쫓아낸다고 믿었다. 이처럼 붉은 팥은 옛날부터 벽사(?邪)의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 모든 잡귀를 쫓는 데 사용되었다. 그래서 경상도 지방에서는 팥죽을 쑤어 삼신·성주께 빌고, 모든 병을 막는다고 하여 솔잎으로 팥죽을 사방에 뿌린다. 경기도 지방에서는 팥죽으로 사당에 차례를 지낸 후, 방을 비롯한 집안 여러 곳에 팥죽 한 그릇씩 떠놓기도 한다. 충남 지방에서는 동짓날 동지불공(冬至佛供)을 드리러 절에 다녀오며, 집에서 팥죽을 쑤어먹는다고 한다. 또 애기동지에는 팥 시루떡을 해먹고 노동지에는 팥죽을 쑤어먹는다. 그리고 중동지는 떡이나 팥죽 중 하나를 해서 먹는다. 한편 지방에 따라서는 전염병이 유행할 때,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한다.

과거 동지에는 동지팥죽과 더불어 책력을 선물하던 풍속이 있다. 예부터 "단오(端午) 선물은 부채요, 동지(冬至) 선물은 책력(冊曆)이라"는 말이 전하여 온다. 전통사회에서는 단오가 가까워 오면 여름철이라 친지와 웃어른께 부채를 여름선물로 선사하고, 또 동지가 되면 책력을 선사하는 풍속이 성행하였다. 책력은 농경사회에서 생업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요긴하게 사용되었던 생활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으며, 동지에는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는 말처럼 달력을 만들어 나눠주었다. 이는 단오에는 부채를, 동지에는 달력을 주고받는 풍속에서 비롯된 말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관상감(觀象監)에서는 새해의 달력을 만들어 궁에 바친다. 나라에서는 이 책에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어새를 찍어 백관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오늘날 동지 무렵이 되면 연말연시의 선물로 새해 달력을 주고받는 풍속도 이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태양력인 동지에다가 태음력을 잇대어 태음태양력으로 세시풍속을 형성시켜 의미를 부여하였다.

또 이날은 동지부적(冬至符籍)이라 하여 뱀 '사(蛇)'자를 써서 거꾸로 붙여 잡귀를 막는 속신(俗信)이 있으며, 팥죽을 쑤어먹지 않으면 쉬이 늙고 잔병이 생기며 잡귀가 성행한다는 속신이 있다. 동짓날 일기(日氣)가 온화하면 이듬해에 질병이 많아 사람이 많이 죽는다고 하며,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여긴다. 또 동짓날이 추우면 해충이 적으며 호랑이가 많다는 믿음이 있다. 예부터 동짓날이 되면 백성들은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겼다. 또 일가친척이나 이웃 간에는 서로 화합하고 어려운 일은 서로 마음을 열고 풀어 해결하였다. 오늘날 연말이면 불우이웃 돕기를 펼치는 것도 동짓날의 전통이 이어 내려온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우리 조상들은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나 재앙이 있을 때에는 팥죽, 팥밥, 팥떡을 해서 먹는 풍습이 있었다. 요즈음도 이러한 풍습이 이어져 고사를 지낼 때에는 팥떡을 해서 고사를 지내고 있다. 고사의 목적은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이 번성하기를 기원하고, 공사를 하는 사람은 공사가 아무런 사고 없이 완공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이처럼 팥이 들어가는 음식은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믿었지만, 그 사실 여부를 떠나 팥이 지닌 여러 가지 효능으로 보아 건강식품임에는 틀림없다.

2015년 동지 날짜와 절입 시간은 (양력) 12월 22일. 13시 48분(한국천문연구원)

[참고문헌]
東國歲時記, 荊楚歲時記
韓國의 歲時風俗 (張籌根, 螢雪出版社, 1984)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2003)
한국세시풍속사전 이종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