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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계절의 여왕으로 불리기도 하고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계절 중 가장 아름다우며 신록이 우거지고 꽃들도 다양하게 많이 피어 있고 자연의 빛과 색 또한 아름답고 사람들도 생기가 돌며 활력이 넘치는 계절이다. 오월이 되면 녹음이 짙어지고 자연의 왕성한 활동과 열매를 맺기 위한 수정 활동을 하게 되며, 벌과 나비가 날아들고 땅의 수분과 기를 품어 세상을 푸른 녹색으로 물들인다. 자연의 조화로움과 신비로움을 세상에 표현하는 싱그러운 계절이다. 한마디로 화려함의 극치다. 이 화려한 자태의 대명사라면 우리는 늘 "여왕"이라고 표현 하였다.

5월은 가정에 관한 날이나 행사들이 많은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지역별로 축제나 각종행사도 많고 가정의 달에는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입양의 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이 있으며, 가정에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이러한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가정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가정을 돌아보고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는 달이 되었으면 한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가정이 편해야 일도 편하게 진행된다. 한 집안의 가장이라면 누구나 가족구성원과 가정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며 일하고 있지만 정작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가족 간 대화 단절로 인한 오해와 불신이 생겨 삐걱거리기 마련인데,,

행사가 많은 5월을 이용해서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지역별 행사나 각종모임에 참석해서 즐거움을 함께 나눌수록 좋겠다. 마침 음력 4월 8일 부처님오신 날도 있고 하니 딸랑 혼자 사찰에 가서 연등만 밝힐게 아니라 가족과 함께 가까운 사찰에 가서 연등을 밝히는 것 또한 가정의 화목을 도모하기에 좋은 시간이 되겠다.

가족과 함께 한다는 게 중요한 것이다. 가정이란 울타리 밖을 나가면 총성 없는 전쟁터와 마찬가지가 아닌가. 가정에 평안 그리고 가족의 건강과 행복이 곧 나의 힘의 근원이자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음력 사월 초파일을 달리 부르는 말은 석가모니가 태어난 날이라고 해서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한다. 또 석탄일(釋誕日), 욕불일(浴佛日), 불탄일(佛誕日), 등석(燈夕) 등이 있으며, 부처님오신 날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 대한불교 조계종이 지나치게 민속화 된 불탄일에 대한 불교적 의미를 복원하고 한자어로 되어 있는 불탄일(佛誕日) 또는 석탄일(釋誕日)을 쉽게 풀이하여 사용하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불탄일 봉축위원회에서 여러 의견을 수렴한 결과 석가모니가 탄생하신 것은 곧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이란 뜻을 지니며 부처님의 뜻이 강조되고, 자비광명이 도래한 날이란 함축적인 의미를 담게 되었다. 이에 봉축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시행하게 되니 한국불교의 모든 종단이 이 용어를 사용하게 되어 오늘날은 석가탄일인 음력 4월 8일을 부처님 오신 날로 통칭하게 되었다. 초파일은 불교 4대 명절 가운데 하나이다. 2월 8일 석가(釋迦) 출가일(出家日), 2월 15일 열반일(涅槃日), 12월 8일 성도일(成道日)을 합쳐 불교의 4대 명절이라 한다. 이 4대 명절 중 초파일이 가장 큰 명절이다. 그러나 이날은 불자(佛子)이건 아니건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이 함께 즐겨온 민속명절로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이날은 연등행사(燃燈行事)와 관등(觀燈)놀이를 중심으로 하는 갖가지 행사가 벌어진다. 연등행사 또는 연등축제로 펼쳐지는 불교의 명절인 초파일이 민속명절로 전승된 것은 재래로 전승되어 온 연등행사와 불교의 연등공양(燃燈供養)이 습합(習合)된 데 연유한다.

불교적 성격을 띤 국가 행사인 연등회(燃燈會)는 551년(진흥왕 12)에 팔관회(八關會)의 개설과 함께 국가적 행사로 열리게 되었고 특히 고려 때 성행하였다. 이는 불교문화권에서 성행하던 불교의례의 하나이다. 불교에서는 불전에 등(燈)을 밝히는 등공양(燈供養)이 차공양(茶供養), 과공양(果供養), 미공양(米供養) 등과 더불어 중요시되었다. 그것은 불전에 등을 밝혀서 자신의 마음을 밝고 맑고 바르게 하여 불덕(佛德)을 찬양하고, 대자대비(大慈大悲)한 부처님께 귀의하여 구제를 받으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불교경전인 『법화경(法華經)』의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에서는 등공양의 공덕이 무량하다고 지적했으며, 『삼국유사(三國遺事)』 권5의 감통편(感通篇)에도 불등(佛燈)에 관한 설화가 있다. 이것들은 모두 등불을 밝히는 참된 의미에 대해 말한 것이다. 등을 밝히는 것이 곧 연등이고, 연등을 보면서 마음을 밝히는 것을 간등(看燈) 또는 관등(觀燈)이라고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에는 관등행사가 매년 정월 15일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연례적으로 이 행사가 행해졌고, 4월 8일의 연등행사 이외에도 민속적으로 전승되어 온 연등행사가 있었음을 일러준다. 그리고 이와 같은 민속적 연등행사와 불교적 연등행사가 습합되어 오늘의 4월 8일, 곧 초파일의 연등축제로 이어진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태조의 훈요십조(訓要十條)에 따라서 연등회를 거국적인 행사로 성대하게 시행하였다. 고려 초기에는 정월 15일에 연등이 있었으며, 이것이 987년(성종 6) 10월에 정회(停會)되었다가 현종 때 2월 15일에 다시 시행하였으며, 그 뒤에는 고려 멸망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이 행사에 관한 기록은 『고려사(高麗史)』에 빈번히 나타난다. 현종 이후의 연등설회(燃燈設會)에 관한 기록은 104번이나 되지만, 2월 연등회로 정하였던 연등회가 반드시 그 날짜를 지켜서 거행되지는 않았다. 1105년(숙종 10)에는 정월에 연등을 행하였고, 의종 때도 정월에 20여 회가 열렸다. 그리고 1105년의 연등에 대하여 『고려사』에는 다른 연등 기사와는 달리 천지신명(天地神明)을 모셨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태조의 정신을 의식적으로 추종했음을 의미한다. 의종 당시에는 인종의 기일(忌日)을 피하기 위하여 정월 연등을 행한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명종 때에는 15회 연등행사를 거행하였는데 대부분 2월에 열렸다. 『고려사』에 따르면 인종의 기일이 정월이므로 2월로 하자는 청에 의하여 그렇게 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 밖에도 연등은 망일(望日)에 여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그날이 한식(寒食)인 경우에는 15일 미리 앞당겨서 열기도 하였다. 그리고 정기적인 연등회뿐만 아니라 특설 연등회가 수시로 열렸음이 기록되어 있다.

1067년(문종 21) 흥왕사(興王寺)가 낙성되었을 때 축제와 함께 연등회가 5일 밤낮 동안 성대히 행해졌다. 또한 1073년 2월에는 봉은사(奉恩寺)에서 불상을 새로 조성하고 경찬(慶讚)을 위한 연등회가 열려 관등(觀燈)과 주연(酒宴)이 밤늦도록 베풀어졌음을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문종 때는 경령전(景靈殿), 중광전(重光殿)에서 성대한 연등회가 있었고, 선종이 8월부터 11월 초순까지 서경(西京)에 머무르는 동안 서경의 흥국사에서 연등도량(燃燈道場)이 열렸고 거리에도 등을 달았다. 1102년(숙종 7) 9월에도 궁궐에서 신호사(神濩寺)까지의 길에 수만 개의 등을 달았고, 1296년(충렬왕 22) 5월에는 공주가 신호사에 가서 연등을 하였는데, 주옥(珠玉)으로 등을 만들어 매우 화려하였다고 한다. 1314년(충숙왕 1) 2월에는 묘련사(妙蓮寺)에서, 3월에는 왕륜사(王輪寺)에서, 1319년 2월에는 강안전(康安殿)에서 공주가 연등하였고, 1324년에는 상왕이 정경궁(廷慶宮)에서 5일 동안 점등하였다고 한다. 12월에는 정경궁에서, 1331년(충혜왕 1) 정월에는 연복사(演福寺)에서 각각 승려 2,000명을 공양함과 동시에 2,000개의 등을 밝혔을 뿐만 아니라 만등회도 열렸다고 한다. 만등회는 등 1만 개를 점등하여 공양하는 의식으로, 이 만등회는 이미 1166년(의종 20)에 열린 기록이 있다. 또한 공민왕도 문수법회(文殊法會) 때 성대하게 연등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연등 외에도 고려에는 사월 초파일의 연등이 있었다. 이날은 석가탄신일로서 매우 성대하게 행해져 인도(印道: India)를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널리 행해졌다. 고려의 경우에는 4월 8일부터 3일 밤낮 동안 미륵보살회(彌勒菩薩會)를 설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사월 초파일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의종 때 백선연(白善淵)이 4월 8일에 점등하였다는 것이며, 그 후 궁중에서도 사월 초파일연등이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공민왕은 직접 초파일에 연등행사를 열었고, 이때부터 초파일연등은 일반 서민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연등은 고려시대에 본격화되어 어린이들까지 참여하게 되었다. 어린이들이 연등 비용을 만들기 위하여 한 달 전부터 종이를 오려서 대나무에 기를 달고 성중(城中)을 다니면서 쌀과 베를 구하는 호기풍속(呼旗風俗)이 생겨났고, 공민왕도 두 차례에 걸쳐 어린이들에게 쌀을 하사한 적이 있다. 이 호기풍속은 연등행사에 따르는 결정적인 민속으로 변하여 조선시대 연등행사에 영향을 주었다. 그와 같은 연등 의식과 행례는 왕이 봉은사 행향(行香)에 따르는 원칙에 준해서 총 1,500명이 넘는 대규모로 베풀어졌고, 대회(大會)와 소회(小會)로 나누어 의식을 거행하였다. 연등회 날은 공휴일이었고 이 연등회의 모든 사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국가에서는 연등도감(燃燈都監)을 설치하였는데, 언제부터 설치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조선 초기에는 상원연등과 초파일연등이 계속되었으나 1415년(태조 15)에 초파일연등을 중지시켰고, 1416년 이후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상원연등에 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1414년부터는 정월연등을 대신하는 수륙재(水陸齋)가 열렸다. 수륙재는 물과 육지에 사는 유주(有主), 무주(無主)의 고혼(孤魂)을 천도하는 의식이다. 조선 태조는 이 수륙재를 2월과 10월에 열었다. 이는 불교에 신심(信心)이 두터웠던 태조가 유생(儒生)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호국신앙의 성격을 띤 봄과 가을의 수륙재를 통하여 연등회와 팔관회를 정기적 행사로 합리화시킨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정월 15일 연등은 조선시대에 와서 수륙재라는 이질적인 현상을 나타내었지만, 초파일연등은 많은 기복을 겪으면서도 꾸준하게 전승되어 오늘에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상에서 보면 초파일은 석가탄신일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이날의 중요행사로 지혜와 광명을 밝힌다는 신앙적 의미가 부각되어 연등행사를 중요하게 여겼다. 또한 이 같은 연등행사는 고대부터 풍년을 기원하는 정월 대보름의 농경의례 등에 자연스럽게 뒷받침되고 습합되면서 고려시대까지는 이 세 가지 연등행사가 국가적 행사로 성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 연등회의 국가적 행사로서의 의미가 사라지자 점차 쇠퇴일로에 이르지만, 사월 초파일연등만은 불교교단과 신도들에 의해 계속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만 초파일연등이 석가의 탄신일을 축하하는 의미로 계속되고 있는 것은 틀림없으나, 여기에는 고려시대까지 계속 성행해 온 민속적 의미가 강한 정월연등, 2월 연등의 행사까지 아울러 행하게 됨으로써 초파일은 단순히 불교적 의미만이 아닌 우리 민족 고유의 세시풍속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따라서 사월 초파일은 불교인이 아니라도 우리 민족에게 세시명절의 하나로 깊이 자리잡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사월 초파일은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의 명절로 정착되어 온 것이다. 그것은 서양인들에 의한 성탄절이 기독교인만의 명절이 아니라 만인의 명절이 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초파일에 신도들은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관불회(灌佛會), 연등행사, 탑돌이를 한다. 초파일 행사 중 연등행사가 가장 성대하게 행해지고 초파일하면 너도나도 등을 다는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석가탄신일인 초파일에 등을 단다는 것은 무명(無明)을 밝힌다는 불교적 의미가 일차적으로 존재하지만, 그것이 모든 민족의 명절로 선행하게 된 데에는 생명의 근원이라는 보편적 의미와 그것을 농경의례화한 우리 민족의 지혜가 한데 어우러져 세시풍속으로 또는 민족의 명절로 오늘에 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등행사에서 등(燈)을 만들 때에도 민속적 취향에 따라 수박등, 거북등, 오리등, 일월등, 학등, 배등, 연화등, 잉어등, 항아리등, 누각등, 가마등, 마늘등, 화분등, 방울등, 만세등, 태평등, 병등, 수복등을 만들어 연등에 민속신앙의 의미를 한층 더 덧붙였음이 『동국세시기』 등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등을 달 때 등대(燈臺)를 세워서 각종 깃발로 장식을 하고 휘황찬란한 연등을 하며, 강에는 연등을 실은 배를 띄워 온 누리를 연등 일색으로 변화시킨다. 이와 같은 축제 분위기의 연등행사는 자연 많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는데, 이를 관등(觀燈)이라고 한다. 연등과 관등이 있는 곳에는 각종 민속놀이도 성행하였다. 초파일에 하는 놀이를 총칭하여 파일[八日]놀이라고 하는데, 그 중 형형색색의 등과 그 불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만석중놀이가 있다. 이를 영등(影燈)놀이라고도 하는데, 이때 영등 안에는 갈이틀을 만들어 놓고 종이에 개와 매를 데리고 말을 탄 사람이 호랑이, 이리, 사슴, 노루 등을 사냥하는 모습을 그려서 갈이틀에 붙이게 된다. 등이 바람에 의해 빙빙 돌아가면 여러 가지 그림자가 비친다. 그리고 호화찬란하게 장식한 등대에 많이 달 때에는 10여 개의 등을, 적게 달 때에는 3개 정도를 달았다. 이와 같은 등대를 고려시대에는 사찰뿐만 아니라 관청, 시장, 일반 민가에 이르기까지 모두 달았으나, 조선시대에 와서는 사찰과 민가로 제한된 듯하고, 오늘날에는 일가일등운동(一家一燈運動)을 전개하고 있으나 대개 사찰에서만 연등하고 있다. 그리고 등을 다는 숫자도 과거에는 식구 수만큼 달았으나, 오늘날에는 한 등에 식구들의 이름을 모두 써서 붙이는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초파일 행사에 관민(官民) 남녀노소가 모두 참여하였고, 조선시대에는 민가에서 남녀노소가 참여하는 민속행사로 치러졌으나, 오늘날에는 불교인들만이 참여하는 행사로 제한되고 있다. 그것은 오늘날에는 불교 이외에도 기독교 등 다른 종교가 수용되어 다른 종교에서는 불교적인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데 기인한 것이라 생각된다. 재래의 사월 초파일이 비단 불교적 의미를 지닐 뿐 아니라 민속적으로도 큰 명절이었음은 그날 즐기던 여러 가지 민속놀이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날 온 장안 사람들이 절을 찾아가서 등을 달아놓은 광경을 구경하였고, 이렇게 사람들이 모이면 관등의 즐거움과 더불어 각종 풍악을 울렸으며, 장안은 인산인해를 이루어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다. 한편 이날 아이들은 등대 밑에 석남(石楠) 잎을 붙인 송편과 검은콩, 미나리, 나물 등을 벌여 놓는데, 이는 석가탄신일에 간소한 음식물로 손님을 맞이하여 즐기는 뜻의 놀이라고 한다. 그리고 등대 밑에 자리를 깔고 느티떡과 소금에 볶은 콩을 먹으며 동이에다 물을 담아 바가지를 엎어놓은 채 돌아가면서 두드리는데, 이 놀이를 수부(물장구)놀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민가의 놀이와 함께 사찰에서는 초파일을 기념하는 법회를 비롯하여 신도들은 성불도(成佛圖)놀이와 탑돌이 등 불교민속적 놀이를 행하였다. 연등(燃燈)의 의미도 많이 변하고 있다. 연등이란 등불을 밝히는 것을 말하는데, 오늘날에는 연등한다는 어원이 변용되어 '연등을 단다'로 바뀌었다. 따라서 종전의 연등행사는 연등을 다는 행사로 바뀌었다. 그리고 각양각색의 등(燈)도 연등(蓮燈)으로 통일되고 있는 추세다. 연꽃은 진흙에서 피어나는 깨끗한 꽃이란 불교적 의미가 강조된 데서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초파일이라 하면 욕불행사(浴佛行事)를 빼놓을 수 없다. 욕불행사란 석가모니가 태어나자 구룡(九龍)이 와서 목욕시켰다는 전설에 따라, 이날이 되면 탄생불(誕生佛)을 욕불기(浴佛器) 안에 모셔놓고 신도들이 돌아가면서 바가지로 물을 끼얹어 목욕시키는 의례를 행한다. 이 욕불행사는 초파일에 행하는 연등행사와 함께 2대 행사의 하나로 매우 중요하다.

사월 초파일은 석가모니가 이 세상에 와서 중생들에게 자비와 광명을 준 날이란 뜻에 일차적 의미가 있고, 그와 같은 의미가 민중의 구체적인 관심사와 결합하여 민중의 축제가 된 것이다. 따라서 초파일에 행하는 연등행사와 욕불행사의 불교적 의미는 지혜를 밝힌다는 상징성이 담겨 있는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그것이 민중문화와 습합되면서 오랜 역사를 통하여 민중의 축제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에 와서는 이날을 공휴일로 제정하여 초파일의 역사성과 문화적 의미를 국민 모두가 되새기고 있다. 부처의 이칭인 석가여래(釋迦如來), 석가세존(釋迦世尊)이 탄생한 날이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부처에 대한 용어는 무척 다양하다. 석가모니(釋迦牟尼), 석가여래(釋迦如來), 석가세존(釋迦世尊), 석존(釋尊) 등이 그것인데, '석가(釋迦)'란 석가모니불이 속해 있던 석가족(釋迦族)을 뜻하고, 석가가 깨달음을 이루고 부처가 된 이후 모니, 여래, 세존 등을 붙이게 되었다.

사월 초파일은 석가모니의 탄생일이라 하여 불탄일(佛誕日) 또는 욕불일(浴佛日)이라고도 하나, 민간 에서는 흔히 초파일이라고 한다. 석가의 탄생일이기 때문에 원래는 불가(佛家)에서 하던 축의행사 (祝儀行事)였으나 불교가 민중 속에 전파됨에 따라서 불교 의식도 차츰 민속화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신라는 여러가지 불교 행사가 성했는데, 무열왕과 김유신 장군이 불교를 호국(護國)의 바탕으로 참여시키는 정책을 유지하면서 불교행사는 이전부터 전해오던 세시행사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병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라의 팔관회(八關會)는 불교행사가 신라의 세시풍속으로 승화된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사월 초파일은 불도의 행사가 신라의 호국불교로 승화된 이래 후삼국을 거쳐서 고려조에 이르는 동안 우리의 민속과 동화되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월 초파일은, 불교의 축의행사로 전래되었다가 민간의 세시풍속과 자연스럽게 동화되면서, 신라의 팔관회, 고려의 연등회 등을 거치면서 완전히 정착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가정의 달 5월은 모든 가정이 부처님의 자비와 광명을 누리는 달이 되었으면 한다.

[참고문헌]

李能和 著. 朝鮮佛敎通史. 慶熙出版社, 1968년
洪潤植. 佛敎와 民俗, 1980년
高麗史, 東國歲時記, 東國李相國集, 世祖實錄, 朝鮮王朝實錄, 太祖實錄, 太宗實錄 朝鮮總督府 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2, 1991년朝鮮金石文總覽. 亞細亞文化社, 1976년